후기/클래식

라흐마니노프 & 라흐마니노프 by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베쿤스트 2023. 2. 5. 20:04
#1.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3개의 피아노 협주곡
일시: 2022.3.30 (수) 19:30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좌석: D블록 5열 3번
-프로그램-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번호 43
피아노 협주곡 2번 다단조, 작품번호 18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작품번호 30

 

 

#2.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3개의 피아노 협주곡(앙코르)
일시: 2022.6.12 17:00
장소: 롯데 콘서트홀
좌석: 1층 C구역 4열 7번
-프로그램-

피아노 협주곡 1번 올림 바단조, 작품번호 1
피아노 협주곡 2번 다단조, 작품번호 18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작품번호 30


두 프로그램북의 다른 점을 찾아보시오

지난 3월과 6월, 나의 두 눈을 의심하는 공연이 펼쳐졌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공연이라니!

보통 연주회에 가면 간결한 서곡에 협주곡 1곡과 교향곡 1곡이 국룰이라

협연자는 보통 한 곡을 하고 떠나는데

협주곡을 연달아 세 곡이나? 싶었다.

거기다 다른 곡도 아니고

라피협 3번은 비록 영화적 메타포일 수 있으나 그 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혼절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악명높은 곡인데,

과연 연주자의 체력이 될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 공연은 더욱더 놓칠 수가 없었고

더군다나 원래도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했지만

2월에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고

(생각해보니 이 뮤지컬도 너무 좋아서 2번이나 봤다… 자체 앵콜…)

나의 당시 상황과 그간의 삶을 위로받으며

그의 삶과 곡들을 다시금 진지하게 곱씹고 있던 차였기에

비록 평일이었지만 퇴근 후 망설임없이 서울로 떠났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예술의 전당에서의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 3개의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파가니니 랩소디도 피협이긴 하나…)

그의 피협 1~3번이 아닌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피협 2,3번으로 이루어졌었다.

이것에 대한 조금의 항의(?)가 있었던지

추후 롯데콘서트홀에서 이어진 앵콜공연에서는

오로지 피협 3곡으로만 이루어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술의전당 프로그램에 만족했는데

그 덕에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라흐마니노프가 그 유명한 피협2번을 작곡한 계기는

그의 교향곡 1번의 대실패 후 우울증을 겪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자기암시요법을 통해 치유된 덕이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여태까지 그 ‘교향곡 1번’을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고,

초연부터 대중들에게 외면받은 1번이기에 여기서도 빠졌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그에 대해 다시금 공부하며 오류를 바로 잡았다.

한편 롯콘에서 만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무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번호 ‘1번’에 빛나는 곡으로서

그가 10대 시절에 작곡했고

비교적 간결한 실내악이나 독주곡도 아닌

관현악에 대한 이해와 피아노에 대한 노련함을 수반해야 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의 첫 출판작으로 선택한 그의 자신감과 천재성에 감탄하게 해주었다.

더불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제목은 들어보긴 했지만 내게 익숙하지는 않은 곡이었는데

이번 공연을 계기로 좋은 곡을 알게 되어 감사했다.

 

예당 D구역 5열 시야

그래도 라흐마니노프의 베스트셀러는 피협 2&3번이기에 두 곡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면

그가 비단 교향곡 1번의 실패 뿐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 누이의 죽음, 스승을 배반했던 일 등으로 괴로워했고, 그것이 우울증을 일으켰다고 나온다.

그래선지 라피협 2번의 3개 악장은 각각 우울-회복-전진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번에 들은 2번에서는 그의 무거웠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선지

유독 1악장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피아노가 더 바닥을 치는 듯 느껴졌다.

한편 2악장으로 넘어가며 느리지만 오케스트라의 인도를 받으며 한걸음씩 전진하는 멜로디는

라흐마니노프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치료를 통해 점점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또한 그 마지막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페이드 아웃 되고 피아노가 홀로서기를 하며 또 바닥을 치지만 그래도 점점 전진하며 3악장으로 나아가는 선율도 인상깊었다.

그 가운데 이 2악장을 관통하며 따뜻하게 감싸주는 선율은 마치,

죄책감 등으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라흐마니노프가 그 안의 슬픔을 다 짜내고 녹여내며

스스로를 안아주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한 멜로디는

라흐마니노프가 모든 우울과 절망을 털어낸 뒤 가볍고 힘차게 달리며

저 멀리멀리로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묘사한 것 같았다.

 

롯콘 C구역 4열 시야

한편 라피협 3번은 2번이 워낙 대중적이기도 해서 그 그늘에 가려(?) 이전까진 나의 관심 밖인 곡이었다.

하지만 어떤분이 자신은 라피협 3번을 가장 좋아한다며

그 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샤인)도 추천해주시며 여러 이야기를 해 주셔서 이 곡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나 역시 지난 겨울부터 한참 러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러시아의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라피협 3번을 돌아보게 되었다.

라피협 3번이 쓰여진 시기는 1909년이고, 이 때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시골집에서

미국 데뷔를 앞두고 평온한 상태에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전에는 이 곡은 라흐 본인이 미국에 자신을 쨘ㅡ하고 드러내기 위해 작곡한,

그냥 화려하고 복잡한 곡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몇 년 후, 미국 데뷔를 위해 이 곡을 썼던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아예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망명하게 된다.

그러나 1917년의 혁명은 2차 혁명이고, 그전에 1905년의 1차 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불안한 러시아의 정세 속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완전히 평안한 상태로 곡 작업을 했을까?

아마 그는 이때쯤에 그가 러시아를 떠나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완전히 돌아오지 못하리란 것을 어느정도 직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선지 2악장에 보면 카덴차무렵,

내가 느끼기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표현한 듯한 멜로디가 등장하는데

그 안에 '아 이제는 떠나야 하는구나. 이 곳으로는 더이상 돌아올 수 없겠구나'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회한이 묻어나는 듯 했다.

아마 그래선지, 3악장에서 그 복잡다단한 마음을 추스른 뒤에

모든 미련을 던져버리고 흥겹게 춤추며 가볍게 날아가는 듯한 멜로디가 펼쳐질 때는

그 선율이 유독 더 시원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세상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있고 또 많은 곡들이 있다.

대부분의 교향곡과 협주곡은 호흡이 길기에 보통은 각각의 곡에서 '어느 악장', '어느 부분'으로만

나의 좋음 포인트를 잡아내곤 했지만,

유독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모든 악장과 모든 부분을 언제 어디서나 듣자마자 바로바로 알 수 있고

모든 부분이 다 좋다.

이는 아마 그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음악 속에 담아낸 그의 삶과 또 진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의 봄과 여름을 감동과 위로로 풍성하게 채워줬던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처럼

나도 삶의 매 순간순간을 진심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꾸려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