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발레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 위험들

리베쿤스트 2023. 2. 7. 14:50
일시: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14:00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좌석: 1층 B블록 7열 6번
원작: 블라디미르 베가체프, 바실리 겔체르
음악: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안무: 유리 그리고로비치

 

국립발레단이 오랜만에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해피엔딩'을 자랑하는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버전이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 처음 봤던 백조의 호수는 '배드엔딩'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랜 세월동안 내게 애증의 작품이었다.

 

국립발레단 60주년

일단 화려하고 예쁜 무대와 의상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처음 선물 받은 발레리나 인형이 딱 '오데트'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선지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정말 인형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건가? 싶어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거기다 당시는 잘 몰랐지만 차이콥스키라는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이 극 전반에 흐르니,

눈에 더해 귀까지 호강하며 어떻게 이 작품을 안 좋아할 수 있었을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7열 시야 군무가 충분히 보이고 눈높이도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왕자 '지그프리트'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백조 '오데트'에게 구구절절 사랑을 맹세해놓고

멍청하게 흑조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 접한 '백조의 호수'에서는 지그프리트의 그 실수로 인해

오데트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그때의 그 충격이란...

'행복한 왕자와 공주' 이야기에 익숙해 있던 아이에게 그런 결말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왕자를, '우리 예쁜 오데트를 죽게 한 나쁜X'라고 여기며

실제 악역인 '로트바르트'보다 더 싫어했던 것 같다.

 

악당, 로트바르트… 하지만 그는 사실… (실체는 뒤에)

1977년 우리 나라에 첫 전막공연으로 올라온 백조의 호수는

이후 여러 차례의 공연을 통해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가

2001년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이 해피엔딩 버전을

국립발레단에 직접 전수하며, 지금의 작품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발레를 보던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발레 음악을 들으면 들었지 발레 공연은 간간히 보는 정도였고,

<백조의 호수>가 <호두까기 인형>처럼 거의 매년 올라오는 레퍼토리도 아니라

이 날의 공연은 내가 거의 처음으로 접하는 '해피 엔딩' 백조의 호수이자

'어른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 백조의 호수 였다.

 

이 날의 주역, 조연재 리나 & 박종석 리노!

오랜만에 만나는 작품이 설레선지

퇴근 전후로 짬짬이 마린스키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통해 예습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군무와 연출 등을 보며

지난번 토월극장에 올라온 <신데렐라>를 본 뒤

우리 나라의 발레 연출은 역시 러시아 등 해외를 따라갈 수 없나? 싶어 실망했기에

조금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소의 차이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 날의 <백조의 호수>는 높고 화려한 무대와 세련된 의상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또한 이번 라인업을 장식한 리나/리노들 중 다른 회차는 모두 내가 좋아하는

리나나 리노가 한 명씩은 끼어있었지만

내가 예매한 회차는 '조연재'와 '박종석'으로 처음 보는 리나와 리노였다.

특히 박종석은 수석이지만 조연재는 아직 드미이기에 이 역시 조금 걱정되기도 하였다.

(나는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의 여주가 가장 극한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의 안무는 정말 내가 감히 평가하지 못할 정도로 훌륭했다.

한편 1막부터 극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광대가 낯익다 싶더니

지난번 <고집쟁이 딸> 때 만난 '배민순'리노였다!

그는 전천후로 활약하며 오랜만에 만나 낯선 극을 친숙하게,

또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극을 가볍고 유쾌하게 해주었다.

 

프로그램북이 다 팔려서… e-book 속 캐스팅 페이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날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엔딩'이었다.

어릴 때는 무조건 '예쁜 것'을 좋아했기에 항상 '오데트'에 감정이입하여 극을 관람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날 나는 처음으로 '지그프리트'에게 나를 투영하게 되었다.

이 날 새롭게 만난 버전 역시

지그프리트가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하는 바람에 오데트가 영원히 백조로 남을 위기에 처하고,

지그프리트와 오데트 모두가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것 까지는 다른 버전들과 같았다.

그러나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엔딩에서 그들은 더이상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다.

 

지그프리트, 오데트 그리고 로트바르트

지그프리트는 비록 실수를 저질렀지만 로트바르트에 맞서 오데트를 지키고,

로트바르트가 지그프리트를 해하려 할 때 오데트가 지그프리트를 지켜준다.

그리고 그 후 프로그램북을 읽으며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로트바르트를 외부에 존재하는 악이 아닌

바로 지그프리트 왕자의 내면에 자리한 어둠으로 해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트바르트는 지그프리트의 운명을 쥐고 있는 천재적인 악마로 묘사되며

그를 '백조의 호수'라는 비현실의 세계로 유인하지만

왕자 밖에 자리한 존재가 아닌 왕자의 무의식 속 어둠의 존재인 것이다.

 

멋진 음악을 들려주신 지휘자님까지 함께…

그렇다면

지그프리트는 자신 안에 있는 어둠(로트바르트)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것(오딜)을 원하는 것(오데트)로 착각하는 바람에

결국 자신의 진짜 사랑을 영원히 얻지 못하게 되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지그프리트가 그 잘못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자신 안에 있는 어둠(로트바르트)과 맞서 싸웠을 때,

자신이 사랑했던 것(오데트) 역시 온 힘을 다해 지그프리트를 지켜주고,

둘은 결국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런 관점으로 극을 이해하고자 하니,

마지막 장면에서 로트바르트가 왕자와 공주를 갈라놓기 위해 끊임없이 방해하지만

오데트 공주가 온 몸으로 막아 왕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사랑이 악마 로트바르트의 악한 힘을 이겨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한층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많은 것에서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고 또 지켜낼 수 있으리란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것에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

그동안은 그 싸움이 너무나 두려워서 차라리 사랑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싸움'보다 '포기'가 덜 고통스럽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그 '포기'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앎’과 별개로 이제 과감히 포기보다 싸움을 선택하냐ㅡ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긴 하다만…)

그리고 이 날의 공연을 통해서는 내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자 했을 때,

나 홀로 외로이 싸우는 것이 아닌

내가 얻고자 하는, 그 사랑하는 그 대상이 되려 나를 지켜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럼 혼자가 아닌 둘이니

그런 일을 충분히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https://youtu.be/4eMKbOfSCeQ

- Scene (Moderato)

https://youtu.be/n3ZvQioRimo

- Scene Finale (Allegro agitato-Moderato e maestoso)

세 인물 모두가, 혹은 그 중 두 명이 무대에 등장할 때면

그 유명한 '정경'이 여러번 강약과 리듬을 변주하며 홀에 울려퍼졌다.

(개인적으로 처음과 마지막 정경을 좋아하는데, 첫번째 정경은 살짝 지루해질 법한 즈음에 익숙한 선율을 들려줘 다시 극에 집중하게 하고,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정경, 온건하던 Moderato에서 치명적인 Allegro agitato로 연주되는 그 선율은 정말… 말해뭐해다)

이전까지 '정경'은 나에게 <백조의 호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일 뿐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할 때,

로트바르트를 이겨낸

지그프리트와 오데트의 힘이 필요할 때 항상 듣게 될 것 같다.​

위험들 <마음 챙김의 시 中>

'...그러나 위험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기에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하므로.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나

배움을 얻을 수도, 느낄 수도, 변화할 수도,

성장하거나 사랑할 수도 없으므로...'

 

<백조의 호수> 속 지그프리트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오데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삶의 반직선을 지나는 과정이다.

로트바르트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이제 여기서 마침표를 찍기로 하고,

이제 조금 더 용기를 내고, 또 확신을 가지는 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