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2년 8월 7일 일요일 18:00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좌석: 1층 A블록 4열 10번
원작: 샤를 페로
안무: 프레데릭 애쉬튼
재안무: 정성복
음악: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이 공연의 관람은 모두 나의 실수와 AI의 인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찐팬인 나는 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그를 영어로 검색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검색창에 이왕이면 풀네임으로 쳐보고 싶어서 ‘sergei…’를 입력했는데,
그때 ‘라흐마니노프’가 뭐더라 하고 헷갈리던 중
자동완성 AI님께서 친히 검색결과를 만들어주셨다.
하지만 그 때, 나도 모르게 미끄러진(?) 내 손은 ‘rachmaninoff’ 대신에 ‘prokofiev’를 클릭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와 프로코피예프의 첫 만남이었는데, 당시 여러 검색 결과 중 그가 발레 <신데렐라>를 위해 작곡한 왈츠를 담은 이 영상이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신데렐라야 뭐 워낙 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라 영상은 익숙한데 음악이 새로웠고
프로코피예프라는 작곡가는 현과 관을 참 가볍고 화려하게 잘 쓰는구나,
실제로 연주를 보면 악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그가 신데렐라, 로미오와 줄리엣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발레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발레’ <신데렐라>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예당에서 지역우수공연 초청으로
부산발레시어터의 <신데렐라>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어차피 8/8에 반차를 낸 H와 판교투어를 하기로 약속을 잡은 겸,
성당 미사를 마치자마자 서울로 향했다.
보통의 발레가 오페라극장에 올라오는 것에 비해
이것은 토월극장이길래
‘재안무 버전이라더니 많은 것을 축소시켰나보구나…, 에이 그래도 뭐 어때~’ 싶었다.
(원래 내 본진은 클래식이기에 발레를 보러 가도 음악 반, 안무 반이고 발레는 단지 음악에 안무를 얹은 것이라 생각한다. 성악 역시 음악에 목소리를 얹은 것, 오페라는 음악에 목소리와 안무, 연기를 얹은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뭐 안무는 재안무 버전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음악은, 나와 프로코피예프의 첫만남이기에 잔뜩 기대했었는데, 반주가 MR이었다…ㅠㅠ
프로코피예프에게 기대했던 그 빠른 관과 현을 MR로 들으니 너무 괴로웠고 내 자리는 대형 스피커가 바로 내려다보고있어 정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거기다 아이들이 참 많았는데
다행히 내가 앉은 줄은 다 성인분들이셨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조용히 관람했지만
내 바로 뒤에 앉은 어떤 학부모와 아이가 계속 조잘거려서 여러모로 귀가 힘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눈은 즐거웠다.
부산발레시어터는 어떤 공연을 펼칠지 궁금했고, 또 그 발레단 자체에는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이 무대에는 주요배역에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객원으로 참여했다.
이번에 처음 본 한나래 리나는 국발의 솔리스트여선지
첫 시작부터 언니들에게 구박받고 매 맞는 신데렐라의 모습을 몸짓뿐만 아니라 표정으로도 잘 표현해주었다.
다만 ‘신데렐라’ 역할이다 보니 맨발로 자주 등장했는데 저러다 부상이라도 입는건 아닌지 무대내내 마음 졸이면서 보았다.
그리고 다른 배역들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무대에서 최선을 다 해주었는데,
무엇보다 1막 끝의 요정 군무에서 재안무 버전이기에 인원이 현저히 부족했는데도,
의상 등이 꽤 화려하고 발레단의 합이 좋아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15-20분 정도 흐른 줄 알았는데
그 군무 후 갑자기 불이 켜지며 인터미션을 알리는 방송이 나와서
귀는 괴로웠지만, 그래도 내가 작품을 즐기며 꽤 작품에 집중했구나, 싶었다.

그 후 이어진 2막은 하지석 리노의 재발견이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챠밍왕자 역을 맡았다.
예전에 국발 <해적>에서 봤을 때는 그 작품 자체가 어두워선지 활짝 핀 듯한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왈츠 군무나 신데렐라와의 파드되 모두 좋았다.
무엇보다 그가 독무에서 가볍게 뛰어다니는데 몸선이 정말 고운 것 같았고 우리나라 발레리노들 중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식으로 무대와 인물에 집중하다보니 2막 역시 순삭이었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는 이 작품의 오리지널 버전이 궁금해졌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해주는 프로코피예프,
인원을 꽉 채운 군무,
또 프레데릭 애쉬튼의 오리지널 안무,
오리지널 의상 등은 어떨지 말이다.
마린스키 발레단이 <지젤>을 들고 내한하던데 <신데렐라>는 안 해주려나?
아니면 나의 음악 버킷리스트에 ‘러시아에 가서 발레 보기’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지 싶었다.
(이렇게 가야 할 국가와 배워야 할 언어가 늘어만 가는건가…?)
이미 토요일도 공연을 해 후기를 찾아보니 악평이 많던데, 나는 뭐 그래도 리나와 리노들은 최선을 다 했고, 재안무를 짜신 단장님도 열악한 환경에서 너무 고생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오랜만에 아이들이 많은 발레극장을 보며 내 발레와의 첫 만남도 떠올릴 수 있었다.
내 첫 발레는 어릴 때 본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었는데, 그때는 아무리 내용이 ‘아이 맞춤’이고 무대가 화려하더라도 졸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아이들도 잘 아는 내용이고 화려한 무대가 압권이라 아이들의 발레 입문용으로 좋을 것 같았다. 또 이야기를 조금 각색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 막마다 샌드아트로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부산발레시어터의 세심함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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