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발레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 - 최고의 전막 발레

리베쿤스트 2023. 2. 7. 11:30
일시: 2022년 6월 11일 토요일 15:00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좌석: 1층 BOX1 02번
안무: 프레데릭 애쉬튼
발레마스터: 장 크로스토프 르사주
음악: 존 랜치베리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필립 엘리스)

 

날은 더웠지만 여름이 아직 봄기운을 벗지는 않았던 6월의 어느 날,

서울역에서 M언니와 계속 미뤄왔던 브런치 회동을 한 후,

<고집쟁이 딸>의 막이 오르는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국립극장은 항상 말만 들었지 그간 인연이 없어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이미 국극을 경험했던 H양을 통해 정보를 얻어 동대입구역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해오름극장 앞에서 편히 내릴 수 있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최근 리모델링한 극장의 깔끔한 모습과 정말 맑았던 이 날의 날씨:)

다만 공연 20분 전에 운행되는 '마지막' 셔틀버스를 이용해 시간이 조금 촉박했던 관계로

처음 가 본 극장을 구경한다거나 커피를 좀 마신다거나 할 수는 없었고

바로 표를 찾고, 프로그램북을 구입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올해는 1962년 창단된 대한민국 최초의, 가장 오래된 직업발레단인 발레단인 국립발레단의 60주년 이었고, 이 날 이들이 올린 작품 <고집쟁이 딸>은 현재 공연되고 있는 발레 레퍼토리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막(2막 3장) 발레였다.

그래선지 뭔가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발레단이 안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발레를 보는 것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내 글이지만 라임 무엇...?ㅎㅎ)

 

해오름극장 BOX1 2번 시야와 프로그램북

<고집쟁이 딸>은 프랑스 안무가 장 도베르발(1742~1806)이 1789년 안무한 것으로 프랑스 혁명 발생 2주 전인 1780년 7월 1일 보르도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도베르발은 우연히 보게 된 판화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는데, 그 판화는 헛간을 배경으로 흐트러진 차림의 처녀가 어머니에게 혼나는 모습 뒤로 청년이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도베르발은 부잣집 아들 알랭과 결혼시키려는 어머니 시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네 농부 콜라스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 딸 리즈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초연 음악은 당시 유행가와 민요를 모아 편곡했는데, 편곡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도베르발은 신이나 왕이 주인공인 영웅적인 주제 대신 서민이 주인공인 코미디를 발전시킨 안무가이다. 그래서인지 음악에 서민들의 민요를 사용한 점,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점 등이 '프랑스 혁명 2주 전'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 나라 역사에서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청자의 유행이 조선시대에는 좀 더 서민적인 백자로 넘어왔던 것처럼...?)

 

등장인물과 무대

한편 <고집쟁이 딸>은 초연 이후 인기를 끌어 업그레이드 된 안무와 함께 유럽 곳곳으로 퍼지며

새로운 안무와 음악으로 여러 버전이 만들어졌는데, 19세기 후반 서유럽에서 발레의 쇠퇴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재능있는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이 모이던 러시아에서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올 정도였으며 20세기 전반 러시아 혁명으로 고국을 떠난 러시아 안무가와 무용수 덕분에 서유럽에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고집쟁이 딸>이 인기 레퍼토리로 부활한 것은 영국 발레 거장 프레데릭 애쉬튼의 공이 가장 컸다.

그는 지휘자 겸 작곡가 존 랜치베리에게 의뢰해 음악을 만들고, 닭들의 유머러스한 춤, 리즈와 콜라스의 리본춤, 시몬의 나막신 춤, 농촌 처녀들의 메이폴 댄스 등 유명한 춤을 안무했다.

 

<고집쟁이 딸>은 처음 보는 작품이었고 (이번에 전막으로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것이 17년 만이다!),

나는 발레를 어린 시절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입문했기에,

나에게 있어 '발레작품'이란 '비장한 음악에 칼군무'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 날 본 <고집쟁이 딸>은 밝은 음악에 아기자기한 무대가 너무나 좋았고

이 작품 덕분에 당시 여러가지 일로 어두웠던 마음에 조명이 확 켜진 듯 했다:)

리즈는 농촌 총각 콜라스와 사랑에 빠져있지만, 그의 어머니 시몬은 그녀를 부잣집 아들 알랭과 결혼시키려 한다.

하지만 리즈는 그것을, 어머니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콜라스와 함께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갔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주변 환경이 '나 자신'을 '나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게 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끊어내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나의 행복을 찾아 나설 것이다.

 

아니, 지난해 대전으로 이사오면서 이미 그 길을 시작했고,

비록 생의 1/3은 휘둘리는 삶이었지만, 이제 2/3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갈 것이다.

나는 더이상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죽기보다 싫은데도 좋은 척 하면서 그곳에 머무르지 않을것이고,

정말 좋아하면서도 내 사랑이 혹여나 그에게 위협이 될까 망설이며

바보같이 놓치지도 않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나로 살기에도 모자른 삶이다.

그렇기에,

내 감정과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살 것이다.

 

<주요 등장 인물>

박슬기(리즈), 허서명(콜라스), 김명규B(시몬), 선호현(알랭), 강동휘(토마스)